카토 우티켄시스와 그의 아내 마르키아 역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카토 우티켄시스'와 그의 아내 '마르키아'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카토 우티켄시스는 흔히들 '소(小)카토'로 알려진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입니다.
공화정 말기, 키케로,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등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등과 대립한 걸로 유명하죠.
또한 카토는 스토아 학파 출신다운 금욕적인 생활과 강직함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이 카이사르의 승리로 끝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자살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 단테 등이 『신국론』과 『신곡』에서 거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카토에게도 부인 마르키아와 관련해서는 생전에 굉장히 논란거리가 된 사연이 있습니다.
카토는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혼전순결인 상태로 아틸리아란 여인과 첫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긔의 첫 결혼생활은 아틸리아의 부정에 의해 결국 끝이 나고 맙니다.
홀몸이 된 카토는 키원전 63년 무렵 '필립푸스'의 딸 '마르키아'와 재혼을 합니다.
카토카 기원전 95년생이니 우리나이로 치면 33살 정도군요.
마르키아의 경우 정확한 출생년도를 알 수 없지만 영문 위키에서는 대략 기원전 8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33살에 아이가 둘 딸린 돌싱남이 18살의 처녀랑 재혼하다니 부들부들
둘의 부부관계는 꽤나 원만했던 걸로 보입니다.
기원전 56년, 카토의 나이 마흔이었을 때 마르키아가 임신했었다고 플루타르코스가 기록하고 있으니깐요,
바로 그때 희대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카토가 동료인 퀸투스 호르텐시우스의 요청에 따라 아내와 이혼한 다음, 그녀를 호르텐시우스에게 보낸 겁니다.

흔히들 키케로와 함께 엮이다 보니 착각을 많이 하지만
카토는 동료인 키케로(기원전 106년생), 정적인 폼페이우스(기원전 106년생)보다 10살 이상 어립니다.
심지어 호르텐시우스는 기원전 114년생으로 카토와는 근 20년 차이가 나는 인물이었죠.
플루타르코스는 카토의 절친한 친구였다가 나중에 좀 틀어진 무나티우스의 말에 따라
호르텐시우스가 카토와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카토에게 딸(!) 포르키아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합니다.
참고로 포르키아는 기원전 70년생으로 호르텐시우스와 44살이나 차이가 났고
심지어 그 당시 비불루스와 결혼하여 우리나이로 고작 15살이었는데 아이들 둘이나 둔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결혼이 혼잡스럽게 이뤄지던 당시 로마에서도 이런 일은 매우 이례적인 지라
호르텐시우스는 진땀을 흘리며 갖가지 말로 카토를 설득하려 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합니다.
한창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나 
너무 많은 아이를 가지면 남편에게 짐이 되는 건 나라 전체를 봤을 때 별로 유익하지 않지만  
포르키아가 자신의 아이를 낳는다면 훌륭한 집안이 후계자를 나누어 가지는 것이니 유익하다는 둥,
만약 포르키아가 자신의 아이만 낳아준다면 다시 비불루스에게 돌려주겠다는 둥의 얘기를 늘어놓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제안에 카토가 출가외인인 딸을 줄 수는 없다며 정중히(!) 거절하자
호르텐시우스는 그렇다면 포르키아 대신 카토의 아내 마르키아를 달라고 얘기합니다.
문제는 이런 미친 호르텐시우스의 제안에 카토가 마음이 흔들려 승락했다는 겁니다. 로마판 막장 드라마 하악
대신 마르키아의 아버지 '필립푸스'의 허락을 받는다면 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요.
그걸 또 필립푸스가 덜컥 허락하는 바람에 결국 마르키아는 호르텐시우스와 재혼하여 그의 아이를 갖습니다.

이 일은 세간에 적잖이 화제가 되었던 걸로 보입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훗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간에 내전이 발발하자(기원전 49년)
카토는 카이사르와 싸우기 위해 폼페이우스를 지지하여 로마를 떠나는데
이때 호르텐시우스가 죽어(기원전 50년) 그의 재산을 상속받을 아이를 가진 마르키아를 다시 아내로 맞이한 다음
로마의 가산과 식솔을 모두 그녀가 관리하게 합니다.
아피아누스는 호르텐시우스 사망과 무관하게 그녀가 출산한 후 카토가 바로 다시 데려왔다는 식으로 썼는데
뭐 어느 쪽이든 카토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게 된 마르키아와 재결합을 한 거죠.
카이사르는 이러한 카토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아내를 사랑하면 왜 타인에게 주었고 사랑 안했으면 왜 다시 데려왔냐? 돈 때문이냐?'라 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의 이 비난을 실은 플루타르코스는 카토의 평소 성품을 볼 때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비판하지만요.
어쩌면 카토가 NTR 기질이 있었는데 카이사르가 이를 이해 못했을 수도...

아피아누스는 '불임인 아내와 결혼한 호르텐시우스가 아이를 갖고 싶었기에 마르키아를 원했다'고 하지만
호르텐시우스에게는 마르키아보다 어리지는 않은 걸로 추측되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는 점에서
아피아누스의 설득력을 약하게 합니다.
그런데 카토에게는 출산한 경력이 있는 심지어 카이사르하고도 염문이 날 정도로 성욕이 왕성한 세르빌리아 등
누이가 둘이나 있었음에도 굳이 한참 어린 마르키아나 포르키아를 원했던 걸 보면
호르텐시우스는 정말 아이를 갖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이로 예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호르텐시우스의 집념에 박수를. 그냥 어린 여자가 좋았던 거?
오늘날 역사가들은 호르텐시우스의 의도가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등과 맞서기 위해
카토와 호르텐시우스 등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앞서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호르텐시우스의 의도를 미는 셈이죠. NTR로 연대감을 얻다니 ㅎㄷㄷ

하지만 카토를 비롯한 당시 공화정 주요 정치가들의 혼맥을 보면 과연 그럴까 하고 의구심이 듭니다.
일단 마르키아의 아버지 필립푸스의 예를 보겠습니다.
그는 기원전 60년에 법무관을 역임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적어도 기원전 99년생 이상임을 의미합니다.
키케로와 거의 비슷한 또래였다고 보여지네요.
그도 사위인 카토처럼 재혼을 하는데 그 상대가 바로 카이사르의 조카 '아티아'(기원전 85년생)입니다.
아티아의 아들이 그 유명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니 결국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인 셈이죠 ㅎㄷㄷ.
앞서 언급된 카토의 딸인 포르키아의 경우도 살펴봅시다.
포르키아는 비불루스가 카이사르-폼페이우스 내전에서 사망한 다음 재혼하는데 상대가 바로 '브루투스'입니다.
정리하면 '카토의 장인'은 '카토의 정적 카이사르'의 조카와 결혼하여 그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를 양자로 뒀고
'카토의 딸'은 아버지의 정적인 카이사르에게 남편을 잃고 훗날 그 카이사르를 암살하는 '브루투스'와 재혼한거죠.
뭐 카이사르와 염문났던 세르빌리아나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혈연, 혼맥은 더욱 꼬여갑니다.
이런 수준인데 과연 카토-마르키아-호르텐시우스의 관계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네요.

그냥 로마 공화정 당시 혼맥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가-재별들 혼맥을 꺼지라고 할 정도로 복잡했다 정도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관계가 '카틸리나'가 키케로, 카토는 물론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에게까지 공격받은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진냥 2017/01/22 23:41 # 답글

    요즘 내전기를 그린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를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 막드를 어떻게 묘사할지 기대가 되네요.
  • 마불 2017/01/23 02:02 #

    콜린 매컬로가 잠깐 언급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그 시리즈를 못 봐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네요 ㅎ
  • ovyjone 2017/05/12 19:31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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